가을이 되면 아이들 주머니가 바빠집니다. 운동장에 나갔다 돌아오면 나뭇잎도 들어 있고, 도토리도 들어 있고,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작은 나무조각도 나옵니다. 어른 눈에는 그냥 낙엽인데 아이들 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어느 날 아이들이 가져온 가을 재료들이 교실 한쪽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뭇잎 몇 장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캠핑 놀이가 되었습니다. 텐트를 만들고, 모닥불을 만들고, 음식을 굽는 흉내를 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문해력이나 글쓰기를 가르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놀다 보니 아이들 입에서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재미있는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가만히 놀지만은 않았습니다.“내가 사마귀 데려왔어.”“나무조각으로 메뚜기 만들었어.”자기가 만든 것을 보여주느..
수영 수업을 앞두고 샤워실 앞에서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선생님, 저 오늘 배 아파요.”수영이 낯설고 무서운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저는 그 아이에게 바로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말하기보다 수영과 조금 친해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먼저 생각했습니다.그때 아이들과 함께 읽은 책이 『컵과 수건의 수영장 대소동』이었습니다.“컵이 수영을 한다고? 말이 안 되잖아요”책 속에서는 컵이 텔레비전으로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를 본 뒤 수영을 배우러 가겠다고 합니다.아이들은 컵이 수영한다는 설정부터 이상하게 느꼈습니다.“컵이 수영을 한다고? 말이 안 되잖아요.”저는 그 반응이 재미있었습니다.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아이들은 그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했습니다.수영하기 전에 수영장부터 ..
아이들과 유치원 안팎을 살펴보며 여러 기호를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처음에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표시를 찾아보는 활동이었습니다.그런데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기호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한 아이가 그림을 보며 말했습니다.“이건 카메라 그림 같은데?”또 다른 아이는 자기가 밖에서 본 경험을 떠올렸습니다.“아빠 차 타고 가다가 본 거랑 똑같아!”“이건 별님반, 이건 햇님반!”유치원 안을 살펴보다가 학급을 나타내는 기호를 발견했을 때 아이들의 반응도 기억에 남습니다.“이건 별님반, 이건 햇님반!”아이들은 그림 하나가 그냥 장식이 아니라 어떤 반을 나타내는 표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주변에서 기호를 계속 찾아보면서 아이들은 그림이나 모양에도 뜻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이번에..
아이들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앤서니 브라운의 『기분을 말해봐』를 함께 읽었습니다.기쁘다, 슬프다, 화가 난다는 말을 아이들도 알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들은 감정 이름만 말하지 않았습니다.자기가 언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를 함께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배가 아플 때 슬퍼서 눈물이 났어요”그림책을 읽은 뒤 아이들과 여러 가지 기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한 아이가 자기 경험을 떠올리며 말했습니다.“배가 아플 때 슬퍼서 눈물이 났어요.”‘슬퍼요’라고 한마디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언제 슬펐는지를 함께 말하고 있었습니다.같은 감정이라도 아이들이 떠올리는 상황은 서로 달랐습니다.“친구가 블록을 밟아서 화가 났어”화가 났던 경험을 이야기할 때는 이런 말도 나왔습니다.“..
일곱 살 아이들과 한글에 대해 알아보는 활동을 했습니다.연필을 들고 자음과 모음을 따라 쓰는 것부터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아이들과 기호를 찾아보고, 몸으로 글자를 표현하고, 말놀이를 하면서 한글을 만나봤습니다.그 과정에서 함께 읽은 그림책이 『춤추는 가나다라』였습니다.몸으로 자음과 모음을 만들어봤습니다아이들은 글자를 눈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몸을 움직여 자음과 모양을 표현해보기도 했습니다.한글을 종이에 쓰기 전에 몸으로 모양을 만들어보니 글자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세종대왕이 왜 한글을 만들었는지 이야기하고 자음의 모양도 함께 살펴봤습니다.그러던 중 한 아이가 발견하듯 말했습니다.“ㅁ이 입 모양이에요!”제가 글자의 모양을 외우라고 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직접 살펴보다가 찾아낸 말이라 더 기억에 ..
3월 첫 주, 아이들과 데이빗 섀넌의 『유치원에 간 데이빗』을 함께 읽었습니다.책에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자주 만나는 여러 상황과 약속이 나옵니다.저는 이 그림책을 한 번 읽고 끝내지 않고 몇 주 동안 여러 활동과 연결해 다시 만났습니다.같은 책을 다시 볼수록 아이들이 꺼내는 이야기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데이빗이 왜 저렇게 하는지 알 것 같아요”처음에는 데이빗의 행동과 유치원에서 지켜야 할 약속을 중심으로 책을 봤습니다.그런데 책을 여러 번 다시 만나면서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선생님, 데이빗이 왜 저렇게 하는지 알 것 같아요.”처음에는 행동 자체를 보던 아이가 이제는 데이빗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생각해보고 있었습니다.저에게는 책의 내용을 얼마나 정확히 기억했는가보다 이런 말이 더 기억에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