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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실인가봐요, 실만 감았는데 모양이 막 나왔어요." 수학동화 한 권을 읽고 나서 아이가 던진 이 한마디가, 제가 하브루타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하브루타(Havruta)란 두 사람이 짝을 이뤄 질문하고, 대화하고, 논쟁하며 사고를 깊게 파고드는 유대인 전통 학습법입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이 방식이 유치원 교실 안에서 이미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하브루타가 어렵게 느껴진 이유, 그리고 제가 바꿔 생각한 것
하브루타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유대인 철학 교육 같은 거창한 느낌에, 우리나라 현장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거든요. 하브루타를 소개하는 자료들을 보면 탈무드, 예시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 같은 단어들이 줄줄이 따라오는데, 그 무게감이 오히려 진입 장벽이 됩니다.
그런데 이 방식의 어원인 '하베르(Haver)'는 단순히 '친구', '파트너'를 뜻합니다. 여기서 하베르란 학습에서 소외되는 사람 없이, 두 사람이 동등하게 발언권을 나눠 갖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짝과 함께 질문을 주고받는 구조 자체가 핵심인 셈이죠.
제가 일하는 사립유치원에서는 몬테소리,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Reggio Emilia Approach), 프로젝트 접근법, 문학적 접근법 같은 교육 패러다임이 새로 나올 때마다 연구하고 수업에 녹여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이란 아이가 주도적으로 탐구하고 교사는 질문으로 사고를 이끄는 이탈리아 발 유아교육 철학입니다. 이 철학은 하브루타와 놀랍도록 결이 같습니다.
놀이중심 교육과정으로 전환된 이후, 사립유치원 현장에서는 도서를 중심으로 아이들의 질문과 탐구를 이어가는 수업이 훨씬 활발해졌습니다. 제 경험상, 하브루타를 따로 배우지 않았어도 그 핵심인 '왜?'라는 질문과 생각의 공유는 이미 우리 교실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요약: 하브루타의 본질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짝과 질문을 주고받는 구조'이며, 사립유치원의 현장은 이미 그 흐름 안에 있습니다.
질문 카드 4가지, 그림책 앞에서 어떻게 써먹었나
그림책으로 하브루타를 실천할 때 핵심은 표지부터 질문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수학동화 『세상 밖으로 나온 모양』을 펼치기 전에, 저는 표지 그림을 아이들 앞에 들고 그냥 기다렸습니다. "이상한 점, 재미있는 점, 신기한 점이 있으면 말해봐." 이 한마디가 시작이었는데,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예상을 훌쩍 넘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하브루타 질문지를 활용했습니다. 질문지는 내용·상상·적용·메타의 네 가지 카테고리로 구성됩니다.
- 내용 질문: 책 안의 사실에 집중합니다. "엄마 표정이 왜 좋지 않았을까?" 같은 질문으로 줄거리를 자연스럽게 짚어갑니다.
- 상상 질문: 책 속 상황을 상상으로 확장합니다. "모양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 어디로 갈 것 같아?" 같은 방식입니다.
- 적용 질문: "나라면 어떻게 할까?"를 묻습니다. 아이들이 책 내용을 자기 삶과 연결해 생각하게 됩니다.
- 메타 질문: 책의 교훈이나 시사점을 다룹니다.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혹시 이걸 말하는 건 아닐까?" 하는 식으로 부드럽게 유도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메타 질문이 가장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영역이라 교사가 과도하게 답을 유도하게 되는 함정이 있거든요. "선생님이 생각하기엔 이런 뜻인 것 같은데, ◯◯이는 어때?" 라고 한 발 물러서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누리과정(출처: 교육부) 관련 요소로 보면, 이 활동은 자연탐구 영역의 '공간과 도형의 기초 개념 형성'과 예술경험 영역의 '다양한 미술 재료와 도구로 선과 모양 표현하기'에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문서 안에 가둬두었던 교육과정 목표가 아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걸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요약: 하브루타 질문지의 4가지 카테고리(내용·상상·적용·메타)는 그림책 한 권을 누리과정 전체와 연결하는 실질적 도구입니다.

"트리케라톱스 뿔이에요" — 유아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
원형 종이접시 가장자리 홈에 털실을 이리저리 감아보는 '줄줄이 모양나라'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1인당 소요 시간은 대략 10분. 실을 홈에 처음 고정하는 부분과 마무리 매듭만 살짝 도와줬고, 중간 과정은 전부 아이들 몫이었습니다.
오감 미술이란 시각, 촉각, 청각 등 여러 감각을 동시에 자극하며 개념을 체득하게 하는 미술 활동입니다. 실을 손가락으로 당기고 엮으면서 선이 교차하는 감각을 손 끝으로 느끼는 이 활동이 딱 그 방식이었습니다. 유아기 아이들에게 도형 개념은 설명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만들어봐야 비로소 자기 것이 됩니다.
"선생님, 이건 트리케라톱스 뿔 같아요!" "여기 우리 집 후라이팬인데!" 세모·네모 같은 추상적 도형 이름을 넘어, 자기 삶에서 끌어온 언어로 모양을 읽어내는 순간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도형의 이름을 외우는 수업보다, 스스로 발견하고 이름 붙이는 과정이 개념 이해를 훨씬 깊게 만듭니다.
한국유아교육학회 자료에 따르면, 유아의 수학적 개념 형성은 직접적인 조작 경험과 언어화 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 가장 효과적으로 내면화된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유아교육학회). 이날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아쉬운 점도 남았습니다. "트리케라톱스 뿔을 찾았네, 그럼 옆에 있는 선은 어떤 모양처럼 보여?" 하고 꼬리 질문을 한 발 더 던졌다면 아이들 표현이 훨씬 풍성해졌을 텐데, 현장이 바빠서 그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하브루타의 핵심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정작 제가 실천하지 못한 셈이죠. 내년에는 접시 모양도 원형 외에 네모, 세모 틀까지 다양하게 바꿔볼 생각입니다. "네모 접시에 감으니까 실이 세모가 되네!" 같은 말이 나올 것 같아서 벌써 기대가 됩니다.
요약: 유아에게 도형 개념은 조작 경험과 언어화가 동시에 일어날 때 내면화되며, 교사의 꼬리 질문이 그 깊이를 결정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하브루타 질문지, 유치원에서 바로 쓸 수 있나요?
A. 제가 직접 써봤을 때, 만 4~5세 아이들에게는 내용 질문과 상상 질문부터 시작하는 게 훨씬 자연스러웠습니다. 적용·메타 질문은 아이들이 책에 충분히 익숙해진 뒤 단계적으로 도입하면 됩니다. 질문을 글로 적어두면 교사 본인의 생각도 정리되는 효과가 있어서, 수업 전 미리 작성해 두는 것을 권합니다.
Q. 그림책 하브루타, 꼭 짝 활동으로 해야 하나요?
A. 하브루타의 원형은 두 사람이 짝을 이루는 구조지만, 유치원 현장에서는 교사와 아이 일대일로도, 소그룹으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소그룹(3~4명)일 때 아이들이 서로의 대답을 듣고 "나는 달라요!"라고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장면이 가장 많이 나왔습니다.
Q. 표지 질문이 효과가 있는 건 왜인가요?
A. 책을 펼치기 전 표지에서 질문을 시작하면, 아이들이 스토리를 미리 추측하고 캐릭터 감정을 상상하면서 읽기 전부터 능동적 독자가 됩니다. 이미 궁금증이 생긴 상태에서 책을 읽으니 집중력도 훨씬 높아지고, 내용을 본 뒤 "내 생각이 맞았어!"라는 성취감까지 따라옵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아이들이 스스로 표지를 보며 질문을 만드는 습관이 생기더라고요.
Q. 수학동화로 미술 활동까지 연결하는 게 무리하게 억지스럽지 않나요?
A. 저도 처음엔 그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감 미술 활동이 도형 개념의 '설명'이 아니라 '경험'으로 기능하면, 아이들에게 전혀 억지스럽지 않습니다. 동화에서 나온 모양을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그 안에서 새로운 모양을 발견하는 흐름이 오히려 가장 자연스러운 연계였습니다.
결론
하브루타를 처음 접할 때 철학적이고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미 우리 교실 안에서 그 본질이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라는 질문 하나에서 시작해 아이들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하브루타라는 이름을 몰라도, 그 흐름은 이미 그림책을 펼치는 순간 시작됩니다.
그림책 한 권, 질문지 한 장, 그리고 교사의 꼬리 질문 하나.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내년에는 올해 놓쳤던 꼬리 질문을 더 챙기고, 접시 모양도 바꿔가며 아이들이 "선이 모여 모양이 된다"는 감각을 더 깊이 가져가도록 해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