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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시즌이 되면 유치원 교실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아이들이 먼저 "선생님, 저 나라는 어디에 있어요?"를 묻기 시작하거든요. 저는 그 에너지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한비야 작가의 동화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와 연결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엔 이 책이 유아에게 너무 무겁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걱정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세계시민의식, 유아에게 너무 이른 주제일까요?
일반적으로 세계시민의식은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쯤 되어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유치원 아이들과 이 책을 펼쳐봤더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세계시민의식이란 자신이 한 나라의 국민이기 이전에 지구 공동체의 일원임을 인식하고, 다른 문화와 인종을 존중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아이들은 이미 그 감각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었습니다.
한비야 작가는 실제 세계 오지의 긴급구호 현장을 누빈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책 표지의 주인공이 지도를 들고 웃으며 걷는 장면을 보고 한 아이가 "사랑하는 마음이 많아서 웃는 거예요"라고 말했을 때, 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는 어른이 며칠을 설명해도 전달하기 어려운 것을 그림 한 장으로 꿰뚫어 본 겁니다.
또 다른 아이는 "아프리카 친구들은 유치원에 놀이터가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어렵게 살고 있는 친구들 이야기를 꺼내자, 교실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그 침묵이 무관심이 아니라 깊은 공감에서 나온 것임을 저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 세계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평화의 편지 만들기
- 긴급구호물품 전달 대작전 역할놀이
- 세계문화 악기 연주와 평화의 지구 만들기
- 굿네이버스 나눔활동 참여 및 저금통 기부
굿네이버스는 1991년 설립된 국제구호개발 NGO로,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아동 권리 보호와 지역사회 개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출처: 굿네이버스 공식 홈페이지). 저금통 하나를 교실 한쪽에 두었을 뿐인데,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동전을 모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큰돈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행동 하나가 아이 마음 안에 심어지는 씨앗의 크기는 절대 작지 않습니다.
하브루타로 책 읽기, 어디서부터 시작하나요?
하브루타(Havruta)란 유대인 전통 교육 방식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둘이 짝을 이뤄 서로 질문하고 대화하며 생각을 깊게 만드는 학습법을 말합니다. 단순히 책을 읽고 "이해했어?"라고 묻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입니다.
제가 처음 하브루타 방식을 시도했을 때, 가장 먼저 버린 질문이 "이 장면에서 주인공이 뭐라고 했지?"였습니다. 확인용 취조 질문, 즉 정해진 정답을 향해 유도하는 닫힌 질문은 아이의 생각을 오히려 닫아버린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뭐야?", "왜 책 제목이 지도 안이 아니라 지도 밖일까?"처럼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의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지구에 살고 있잖아요"라며 스스로 이유를 찾아내기 시작했고, 어떤 아이는 "우리 집이 빵집이니까 택배로 빵을 보내주면 어때요?"라는 구체적인 나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하브루타를 처음 접하면 상상 질문, 즉 창의적 확장을 이끄는 질문만 던지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내용 파악이 바탕에 깔리지 않은 상상 질문은 그냥 공상으로 끝나버립니다. 내용 질문(사실 파악)으로 책의 뼈대를 잡고, 그 위에 상상 질문으로 날개를 달아주는 순서가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또 하나, 하브루타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와의 정서적 유대감입니다. 아이가 엄마 눈치를 보며 말을 고르는 상황에서는 어떤 질문 기술도 효과가 없습니다. 뭐든 말할 수 있는 안전한 분위기, 틀려도 괜찮다는 믿음이 먼저 형성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교실에서 매일 확인합니다. 선생님과 눈이 편안하게 마주쳐야 아이가 비로소 입을 엽니다.

사회정서지능, 왜 유아기가 결정적인가요?
사회정서지능(SEL, Social Emotional Learning)이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며,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관계를 건강하게 이어가는 능력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IQ가 아니라 EQ의 심화 버전이라고 보면 됩니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 역량으로 꾸준히 주목받고 있는 개념입니다.
미국 CASEL(협력적 학문적·사회적·정서적 학습 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SEL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학업 성취도가 평균 11% 높게 나타났습니다(출처: CASEL 공식 홈페이지).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공감 능력이 높은 아이가 결국 배움도 잘한다는 겁니다.
제가 유치원에서 목격한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나눔'과 '함께'라는 단어를 아이들에게 설명해달라고 했을 때였습니다. 한 아이가 "함께는 나도 좋아야 하고 친구도 좋아야 하는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아이는 "나눔은 내 것을 반으로 주는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어떤 어른의 언어보다 정확하고 따뜻했습니다.
이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유아기에 세계 어딘가에 어려운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감각을 몸으로 배운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사람이 됩니다. 메타인지(Metacognition), 즉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들여다보고 조절하는 능력도 이 과정에서 함께 자랍니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 생각을 말로 꺼내보는 경험을 반복할 때 아이의 메타인지는 조용히 성장합니다.
마지막 활동으로 저희 유치원은 '우리 유치원 세계행진'을 진행했습니다. 아이들이 세계 각국의 의상과 깃발을 들고 형님반과 동생반이 하나 되어 유치원 전체를 행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행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습니다. 세계 속의 내가 되겠다는 다짐이었고, 아이들 스스로 그것을 느끼며 걸었습니다. 제가 20년 가까이 이 일을 해오면서 그날 그 행진만큼 뭉클했던 순간이 많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어린이판은 몇 살부터 읽힐 수 있나요?
A. 일반적으로 초등 저학년용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만 5~6세 유아도 그림과 교사의 안내가 함께라면 충분히 핵심 내용을 흡수합니다. 중요한 것은 책의 수준이 아니라 대화의 깊이입니다. 아이가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은 질문으로 풀어주면 됩니다.
Q. 하브루타 질문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A. 좋은 질문과 나쁜 질문의 경계에 너무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쉬운 출발점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뭐야?"입니다. 정답이 없는 질문이라면 무엇이든 시작이 됩니다. 처음부터 철학적 질문을 만들려고 하면 오히려 막힙니다. 내용을 확인하는 질문과 상상을 자극하는 질문을 번갈아 써보세요.
Q. 굿네이버스 나눔활동, 가정에서도 참여할 수 있나요?
A. 네, 개인 기부와 저금통 기부 모두 가정에서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큰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저금통에 동전을 넣는 행위 자체가 나눔을 몸으로 배우는 경험입니다. 연말 구세군 냄비처럼 작은 실천이 아이의 사회정서지능을 키우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Q. 아이가 질문에 대답을 안 해요. 하브루타가 안 맞는 건가요?
A.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가 능력 부족이 아니라 생각할 시간과 안전한 환경이 부족하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질문 후 침묵을 10초 이상 기다려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먼저 아이의 말에 공감해주는 따뜻한 관계를 쌓는 것이 하브루타보다 선행되어야 합니다.
결론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처음 교실에 들였을 때, 솔직히 저도 이 책이 아이들 마음에 얼마나 닿을지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저보다 훨씬 빨리, 훨씬 깊이 이 책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세계시민의식도, 하브루타도, 사회정서지능도 결국 아이의 일상과 감정 안에서 자라납니다. 거창한 커리큘럼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오늘 잠자리에서 이 책 한 권을 펼치고, 아이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뭐야?"라는 질문 하나를 던져보십시오. 그 대화가 쌓이는 것이 미래를 살아갈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선물이라고, 저는 교실에서 매년 확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