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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놀이에서 본 생각의 힘

richtop1 2026. 8. 28.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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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여름, 교실 불을 끄고 모닥불 영상을 틀어놓은 채 캠핑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아줘야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텐트도 있어야 하고, 화로도 있어야 하고, 역할도 정해야 놀이가 제대로 굴러갈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나설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 캠핑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그 한마디 뒤에 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텐트를 만들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화로를 맡았습니다.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조금 떨어져서 보기로 했습니다.

    역할을 정해주지 않았는데 역할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놀 때 어른이 먼저 정해주는 것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너는 이것 해”, “여기는 이렇게 만들어”라고 말하면 빠르게 정리는 됩니다. 하지만 그날은 일부러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아이들끼리 필요한 일을 찾았습니다. 더 재미있었던 건 한 아이가 캠핑장 입구에 자동차 진입금지 표지판이 있어야 한다고 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알려준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캠핑장이라는 공간을 생각하다 보니 자기가 밖에서 봤던 표지판까지 놀이 안으로 가져온 겁니다.

    저는 이런 순간이 참 좋습니다. 무엇을 배웠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아이가 알고 있는 것이 툭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캠핑을 안 해본 아이가 만든 텐트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캠핑을 많이 다녀본 아이들이 놀이를 이끌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모습을 알고 있으니 당연히 더 잘 만들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 예상과 달랐습니다.

    캠핑 경험이 거의 없던 아이가 천과 블록을 가지고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모양의 텐트를 만들었습니다. 진짜 텐트와 닮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본 것이 많지 않으니 자기 생각대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옆에서는 캠핑을 해본 아이가 “그건 이렇게 해야 해”라고 말했고, 또 다른 아이는 전혀 다른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경험과 상상이 뒤섞이면서 처음 계획에는 없었던 캠핑장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아이에게 경험을 많이 주는 것만큼, 그 경험대로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주는 것도 필요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금도끼 은도끼 동극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금도끼 은도끼 동극을 준비할 때도 아이들이 보여준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산신령을 하고 싶은 아이도 있었고, 나무꾼을 하고 싶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모두 원하는 역할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역할을 정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속상해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무대 역할을 맡지 못하고 소품을 만들게 된 아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열심히 움직였습니다. 도끼를 만들고 연못을 꾸미면서 자기 역할을 만들어갔습니다.

    아이들과 준비한 금도끼 은도끼 동극

    누가 더 중요한 역할인지 따지기 시작했다면 놀이가 오래가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기 자리를 찾았고, 결국 무대는 배우 몇 명이 아니라 여러 아이가 함께 만든 결과물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기가 할 일을 찾아갔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평소 매미 소리도 무서워하던 아이였는데 동극을 할 때는 제 예상보다 훨씬 큰 목소리로 대사를 했습니다.

    그 아이를 보면서 저는 아이의 모습을 너무 빨리 정해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겁이 많은 아이, 말이 적은 아이, 앞에 나서지 않는 아이처럼 어른이 붙여놓은 모습이 놀이 안에서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캠핑 놀이를 하며 마시멜로를 굽고, 텐트를 만들고, 역할을 나누고, 다른 날에는 동극 무대를 함께 준비했습니다. 각각 따로 보면 그냥 놀이입니다.

    하지만 제가 곁에서 오래 지켜보니 아이들은 그 시간 안에서 계속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만들지, 누구와 할지, 잘되지 않을 때 어떻게 바꿀지 스스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이 놀이를 시작하면 제가 무엇을 가르칠지부터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조금 기다려봅니다. 어른이 먼저 정하지 않았을 때 아이들이 어디까지 가는지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