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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면 아이들 주머니가 바빠집니다. 운동장에 나갔다 돌아오면 나뭇잎도 들어 있고, 도토리도 들어 있고,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작은 나무조각도 나옵니다. 어른 눈에는 그냥 낙엽인데 아이들 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이 가져온 가을 재료들이 교실 한쪽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뭇잎 몇 장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캠핑 놀이가 되었습니다. 텐트를 만들고, 모닥불을 만들고, 음식을 굽는 흉내를 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문해력이나 글쓰기를 가르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놀다 보니 아이들 입에서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가만히 놀지만은 않았습니다.
“내가 사마귀 데려왔어.”
“나무조각으로 메뚜기 만들었어.”
자기가 만든 것을 보여주느라 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물었습니다.
“그래? 그럼 그 메뚜기는 뭘 먹어?”
질문 하나를 던졌을 뿐인데 이야기가 또 이어졌습니다. 아이가 한 문장으로 끝낼 줄 알았던 이야기에 다음 이야기가 붙고 또 붙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아이들에게 말을 잘하는 방법을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아이는 스스로 말하고 싶어 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또 다른 모습이 보였습니다
놀이에서 나온 관심을 ‘가나다 소풍’ 동화책으로 이어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의 한 부분을 소리 내어 읽어보게 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의외의 것을 발견했습니다.
눈으로 볼 때는 잘 읽는 것 같았던 아이도 소리를 내면 중간에서 머뭇거렸습니다. 어떤 아이는 발음이 뭉개졌고, 어떤 아이는 읽던 줄을 놓치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책을 몇 권 읽었는지를 세는 것보다 아이가 한 페이지를 어떻게 읽는지를 더 유심히 보게 됐습니다. 한 페이지를 천천히 소리 내어 읽게 해보면 어디에서 편안하게 읽고, 어느 글자에서 멈추는지가 눈에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조금 전까지 가지고 놀았던 나뭇잎이나 가을 이야기가 책에 나오면 반응이 달랐습니다. 자기가 경험한 것이 책 속 글자와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모닥불”과 “모닥불에서 음식을 구웠다”
캠핑 놀이가 끝난 뒤에는 오늘 가장 재미있었던 것을 한 줄만 써보게 했습니다.
여기서도 아이들의 차이가 보였습니다.
한 아이는 종이에 “모닥불”이라고 썼습니다. 다른 아이는 “모닥불에서 음식을 구웠다”라고 썼습니다.

저에게는 이 장면이 꽤 오래 남았습니다. 둘 다 같은 놀이를 했는데 한 아이는 떠오른 단어를 적었고, 다른 아이는 자기가 한 일을 문장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긴 글을 쓰게 하는 대신 한 줄을 제대로 써보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쓸거리가 없어 고민하지 않도록 30~40개의 짧은 주제를 준비하고 그중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고르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줄 앞에서도 한참 머뭇거렸습니다. 그렇다고 다섯 줄을 채우라고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주쯤 지나자 재미있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한 줄이면 끝내던 아이가 두 줄을 쓰고, 두 줄을 쓰던 아이가 세 줄까지 자기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시키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어른은 자꾸 결과를 빨리 보고 싶어집니다. 책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고, 글도 길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반대로 했을 때 아이들이 더 오래 간다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한 페이지를 소리 내어 읽어보고, 오늘 있었던 일을 한 문장으로 써보고, 신이 나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중간에 자르지 않고 들어주는 것.
가을 나뭇잎 놀이에서 시작된 활동을 돌아보니 제가 아이들에게 해준 것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래서?”, “그다음에는?”, “그건 왜 그랬을까?” 하고 한 번 더 물어봤을 때 아이들의 말이 길어졌습니다.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질문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정말 궁금해하는 어른 한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요즘도 아이가 무언가 신이 나서 말하기 시작하면 정답부터 알려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조금 더 듣고, 한 번 더 묻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자기 생각을 스스로 이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는 참 좋습니다.